인간 관찰 기록 (4) 썸네일형 리스트형 늙어간다는 건 기억을 잃는 게 아니다<선재 업고 튀어> 말자 할머니의 시간 공원 벤치에 가만히 앉아 계시는 어르신을 봅니다. 그 옆으로 바쁘게 스쳐 지나가는 젊은이들의 10분이 앞을 향해 직선으로 빠르게 달려 나가는 시간이라면, 노인의 10분은 지나온 세월이 겹겹이 쌓인 깊고 묵직한 시간의 우주일지도 모릅니다. 청춘을 지나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문득 그 같은 공간 속 다른 시간의 밀도가 궁금해집니다.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치매를 앓는 말자 할머니의 나지막한 대사는, 오락가락하는 노인의 눈빛을 안타까움이 아닌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여. 모두 내 이 영혼에 스미는 거여. 그래서 내 머리로는 잊어도 내 영혼은 잊지 않고 다 간직하고 있재. 세 살 적 엄마 품에서 어리광 부릴 때로도 갔다가, 열여덟 서방 만날 때로도 갔다가.. 오정희는 왜 딸을 사랑한다는 말 대신 '근사하다'고 했을까 드라마 〈모든 사람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운다〉를 보다 보면, 마음을 툭 건드리는 장면이 하나 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어릴 적 딸을 매정하게 두고 떠났던 대배우 오정희(배종옥 분). 그녀가 사석에서 제3자에게 제 딸 이야기를 툭 던지는 순간이다. 보통의 엄마들이라면 미안함에 눈물을 훔치거나 핑계를 댔을 텐데, 오정희는 전혀 다른 단어를 꺼낸다. "내 친딸. 너따위랑은 비교도 안되게 근사해." 착하다도 아니고, 예쁘다도 아니고, 심지어 멋지다도 아니다. 왜 하필 '근사(近似)하다'였을까? 이 낯선 단어 하나에 오정희라는 인간의 지독한 모순이 서려 있다. 지옥에서 도망친 생존자, 지옥을 물려준 가해자세상은 오정희를 향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눈이 멀어 자식을 버린 비정한 악녀라고 손가락질한다... 인생이 엉뚱한 문 앞에 당신을 데려다 놓았을 때: 염창희의 멈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염창희를 완성하는 최고의 명장면은 단연 마지막 ‘강의실 멈춤’이다. 다른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문을 잘못 열고 들어간 곳, 하필 생각지도 않은 장례지도사 수업이 개강하는 그곳에서 창희는 도망치는 대신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버린다. 이미 그의 여정을 다 아는 우리에게 이 엉뚱한 행동은 묘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예상하지 못한 당혹감이라는 방어기제에 밀려 얼른 문을 닫고 도망쳤을 것이다. 계획이 틀어지는 불안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희는 멈춰 섰다. 창희는 처음으로자기 인생이 잘못 들어선 게 아닐 수도 있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창희는 늘 자기 인생이어딘가 잘못 배달됐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원하는 인생(서울 노른자위)과지금 자기 모습(.. 민정우의 빨간 안전벨트는 변명이었다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후반부에서가장 이상하리만큼 눈에 남았던 건민정우 총리의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가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던진한 빨간색 안전벨트였습니다. 차 안은 거의 새까만 어둠에 가까웠습니다. 검은 옷, 검은 시트, 닫힌 공간. 그런데도 그 붉은 선 하나만은유독 선명했습니다. 마치 끝까지 숨기지 못한내면의 경고등처럼 보였습니다. 민정우는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던 사람이었습니다. 실패보다계산이 어긋나는 걸 더 견디지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예상하지 못한 변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무너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울 때,의외로 가장 먼저 “명분”을 붙잡습니다. 질투는 정의가 되고,복수는 선택이었다고 믿게 됩니다.열등감은 어느새 ..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