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벤치에
가만히 앉아 계시는 어르신을 봅니다.
그 옆으로 바쁘게 스쳐 지나가는
젊은이들의 10분이
앞을 향해 직선으로 빠르게 달려 나가는 시간이라면,
노인의 10분은
지나온 세월이 겹겹이 쌓인 깊고 묵직한 시간의 우주일지도 모릅니다.

청춘을 지나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문득 그 같은 공간 속 다른 시간의 밀도가 궁금해집니다.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치매를 앓는 말자 할머니의 나지막한 대사는,
오락가락하는 노인의 눈빛을
안타까움이 아닌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여.
모두 내 이 영혼에 스미는 거여.
그래서 내 머리로는 잊어도
내 영혼은 잊지 않고 다 간직하고 있재.
세 살 적 엄마 품에서 어리광 부릴 때로도 갔다가,
열여덟 서방 만날 때로도 갔다가...“

상실이 아닌, 영혼의 자발적 유영
우리는 나이 듦과 치매를
'기억을 잃어버리는 비극'이라는
상실의 시선으로만 바라봅니다.
정신이 잠깐 돌아와야만
비로소 안도하곤 하죠.
하지만 할머니의 통찰은
그것이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낡아버린 뇌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영혼의 가장 다정한 도피'라고 말해 줍니다.
인간은 현실이 고단하고 몸이 약해질 때,
본능적으로 가장 아늑하고
온전히 사랑받았던 기억의 요람을 찾습니다.
할머니의 초점 없는 눈빛은
정신을 놓아버린 공백이 아니었습니다.
머리라는 기억 장치는
낡아서 삐걱거릴지언정,
영혼은 세 살 적 엄마의 품속으로 들어가
그 살냄새를 맡고,
열여덟 살의 봄날로 돌아가
수줍게 첫사랑의 손을 잡는 중인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는 노인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짧은 침묵 속에는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수십 년의 시간이
겹겹이 흐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길가 벤치의 노인을 보며
안타까움 시선 대신
조용한 응원을 보내고 싶어지는 이유입니다.
" 지금은 몇 살의 기억 속을 여행하고 계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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