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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보아즈 [인간관찰 기록] 왜 개망나니 보아스의 거친 손 끝에서 구원이 시작되었을까?소설 《블랙박스》를 읽다 보면 초반에는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아들 '보아스'다. 어른들의 말을 사사건건 거부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모습은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망나니'의 전형처럼 보인다.하지만 소설의 진짜 반전은, 모두가 손가락질하던 이 망나니 소년의 거친 손끝에서 시작된다.가르치려 드는 어른들의 위선적인 세상보아스를 둘러싼 기성세대의 세계는 지독하리만치 말만 번지르르하다. 엄마 일라나는 전남편을 향한 애증 섞인 폭주를 '사랑'이라 포장하고, 두 번째 남편 미하엘은 종교적인 율법을 들이밀며 보아스를 '교화'시키려고 안달이 나 있다.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이리 와서 내 말 들어." 어른들은 끊임없..
왜 어떤 사람은 평온보다 상처를 더 그리워할까 <블랙박스> 살다 보면 참 이해하기 힘든 선택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던 인생을겨우 추스르고 따뜻한 일상을 만들었으면서,느닷없이 제 발로 옛날의 그 지옥 같은 진흙탕 속으로다시 걸어 들어가는 사람 말이다. 소설 《블랙박스》 속 여주인공 '일라나'가 딱 그런 인물이다. 평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두 번째 남편 미하엘과의 삶은일라나에게 과분할 만큼 따뜻한 안식처였다. 가난하긴 했지만, 미하엘은 지극히 성실했고,일라나를 온 마음으로 아끼고 떠받들었다. 전남편 기드온에게살이 뜯기는 듯한 상처를 받고 쫓겨났던 일라나에게,미하엘의 식탁은 영혼을 치료해 주는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하지만 일라나는그 평온한 식탁 위에서 서서히 질식해 간다. 그녀는 아들의 합의금을 구한다는 핑계로전남편 기드온에게 다시 ..
매튜 그린은 왜 끝내 온기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이유리 작가의 소설 《달리는 무릎》에는공동체에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다수결 투표를 통해 육체를 빼앗긴 채우주의 먼지로 흩뿌려진 외계인이 등장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무브 투 헤븐》의 매튜 그린(강성민)을 볼 때,이 지워진 외계인의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미국으로 입양되었으나시민권을 얻지 못해 유령처럼 쫓겨났고,친엄마를 찾기 위해 돌아온 한국에서조차"왜 한국말도 못 하냐"는 비웃음을 사며결국 차가운 방에서 고독사한 인물. 매튜 역시 사회가 규정한‘쓸모없음’이라는 잣대에 밀려난,길가의 잡초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의 곁엔 정말 아무도 없었을까?"라는 답답함매튜의 비극을 보며마냥 동정하기엔마음 한구석에 지독한 답답함이 남습니다. '혹시 그의 곁에도 누군가 있었던 건 아닐까.왜 그걸 찾지 못했..
늙어간다는 건 기억을 잃는 게 아니다<선재 업고 튀어> 말자 할머니의 시간 공원 벤치에 가만히 앉아 계시는 어르신을 봅니다. 그 옆으로 바쁘게 스쳐 지나가는 젊은이들의 10분이 앞을 향해 직선으로 빠르게 달려 나가는 시간이라면, 노인의 10분은 지나온 세월이 겹겹이 쌓인 깊고 묵직한 시간의 우주일지도 모릅니다. 청춘을 지나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문득 그 같은 공간 속 다른 시간의 밀도가 궁금해집니다.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치매를 앓는 말자 할머니의 나지막한 대사는, 오락가락하는 노인의 눈빛을 안타까움이 아닌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여. 모두 내 이 영혼에 스미는 거여. 그래서 내 머리로는 잊어도 내 영혼은 잊지 않고 다 간직하고 있재. 세 살 적 엄마 품에서 어리광 부릴 때로도 갔다가, 열여덟 서방 만날 때로도 갔다가..
궤도를 바꾼 사람은 코뿔소의 무리를 이탈한다 지상은 거대한 사육장이다. 하나의 깃발이 꽂히고 함성이 시작되면,군중은 일제히 척추를 구부리고거친 가죽을 뒤집어쓴 채맹목적인 질주를 시작한다. 외젠 이오네스코의 희곡 《코뿔소》는문학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상영되는현실의 거울이다. 처음에는 코뿔소의 등장을야만이라 비난하던 지식인도, 논리학자도, 연인마저도무리의 숫자가 다수가 되는 순간"이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트렌드"라며스스로 괴물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 균형을 잡으려는 이들은양쪽에서 '회색분자'라 지탄받으며 침묵 당한다. 지상은 말한다. 내부에 머물며 불평을 늘어놓거나,대세를 따르며 안주하라고. 집단의 혜택을 누리면서내부의 규정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또 다른 모순일 수 있다. 진정한 주체성은소모적인 내부 투쟁에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방향이 맞지 않음을 ..
오정희는 왜 딸을 사랑한다는 말 대신 '근사하다'고 했을까 <모든 사람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운다> 드라마 〈모든 사람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운다〉를 보다 보면, 마음을 툭 건드리는 장면이 하나 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어릴 적 딸을 매정하게 두고 떠났던 대배우 오정희(배종옥 분). 그녀가 사석에서 제3자에게 제 딸 이야기를 툭 던지는 순간이다. 보통의 엄마들이라면 미안함에 눈물을 훔치거나 핑계를 댔을 텐데, 오정희는 전혀 다른 단어를 꺼낸다. "내 친딸. 너따위랑은 비교도 안되게 근사해." 착하다도 아니고, 예쁘다도 아니고, 심지어 멋지다도 아니다. 왜 하필 '근사(近似)하다'였을까? 이 낯선 단어 하나에 오정희라는 인간의 지독한 모순이 서려 있다. 지옥에서 도망친 생존자, 지옥을 물려준 가해자세상은 오정희를 향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눈이 멀어 자식을 버린 비정한 악녀라고 손가락질한다...
궤도를 바꾼 사람은 시간의 부피를 잰다 지상은째깍거리는 시계의 물리적 박자를 보며모두에게 공평한 하루가 흐른다고 믿는다. 착각이다.지구의 자전이 규격화한 24시간은생명이 체감하는 시간의 밀도와완전히 어긋난다. 북극의 동토에서고작 몇 개월의 여름 동안싹을 틔우고 열매까지 맺어내는식물의 시간은 초 압축된 폭발이다. 만약 인간이자신의 소멸점을 명확히 인지한다면지상의 삶은지금처럼 느슨할 수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망각에 속아,대부분은영원히 살 것처럼 시간을 흘려보낸다. 육십의 하루는서른의 하루보다 무겁다. 시간의 비대칭성은인간 곁의 작은 생명들을 바라볼 때더욱 명징해진다. 야성을 반납하고인간이 구축한 세계에전 생애를 의탁한 존재들. 그 연약하고 취약한 생명이가만히 햇빛 아래에서 허공을 응시할 때, 그 시선은지구의 자전 속도가 아닌자신만의 메트로..
인생이 엉뚱한 문 앞에 당신을 데려다 놓았을 때: 염창희의 멈춤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염창희를 완성하는 최고의 명장면은 단연 마지막 ‘강의실 멈춤’이다. 다른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문을 잘못 열고 들어간 곳, 하필 생각지도 않은 장례지도사 수업이 개강하는 그곳에서 창희는 도망치는 대신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버린다. 이미 그의 여정을 다 아는 우리에게 이 엉뚱한 행동은 묘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예상하지 못한 당혹감이라는 방어기제에 밀려 얼른 문을 닫고 도망쳤을 것이다. 계획이 틀어지는 불안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희는 멈춰 섰다. 창희는 처음으로자기 인생이 잘못 들어선 게 아닐 수도 있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창희는 늘 자기 인생이어딘가 잘못 배달됐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원하는 인생(서울 노른자위)과지금 자기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