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리 작가의 소설 《달리는 무릎》에는
공동체에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수결 투표를 통해 육체를 빼앗긴 채
우주의 먼지로 흩뿌려진 외계인이 등장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의 매튜 그린(강성민)을 볼 때,
이 지워진 외계인의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미국으로 입양되었으나
시민권을 얻지 못해 유령처럼 쫓겨났고,
친엄마를 찾기 위해 돌아온 한국에서조차
"왜 한국말도 못 하냐"는 비웃음을 사며
결국 차가운 방에서 고독사한 인물.
매튜 역시 사회가 규정한
‘쓸모없음’이라는 잣대에 밀려난,
길가의 잡초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의 곁엔 정말 아무도 없었을까?"라는 답답함
매튜의 비극을 보며
마냥 동정하기엔
마음 한구석에 지독한 답답함이 남습니다.
'혹시 그의 곁에도 누군가 있었던 건 아닐까.
왜 그걸 찾지 못했을까?’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본인의 의지를 조금 더 발휘해서
끈질기게 뿌리를 내릴 수는 없었을까?’
냉정하게 보면 매튜는
고립을 자처한 것처럼 보입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세상의 틈바구니에서도
나름의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방법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왜
주위에 있었을지도 모를
그 온기들을 전혀 보지 못하고
끝내 자신을 스스로 닫아버렸을까요?
뽑으려는 손을 먼저 의심하게 되는 마음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거절당하고,
낯선 이국땅에서조차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며 자란 사람의 마음은
아스팔트 틈새에 겨우 낀 흙 한 줌보다 위태롭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세상은
언제 자신을 통째로 뽑아버릴지 모르는
거대한 제초기와 같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마주한
"왜 한국말도 못 하냐"라는 차가운 시선은,
그나마 쥐고 있던
마지막 생의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결정타였습니다.
사람은 계속 뿌리째 뽑히다 보면,
언젠가부터 꽃을 건네는 손보다
자신을 뽑으려는 손을 먼저 의심하게 됩니다.
마음의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나면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잃어버립니다.
나를 도우려는 손길이 닿아도,
‘저 손도 결국 나를 또 거절하거나 버릴지 모른다’라는
두려움이 앞서
눈과 귀를 꽉 닫아버리는 것이죠.
그가 그토록 친엄마를 찾으려 헤맸던 건
대단한 인생의 변화를 바란 게 아니었을 겁니다.
내 존재의 시작점인 엄마에게만큼은
"너는 버려질 만해서 버려진 게 아니다"라는
단 한 번의 확인을 받고 싶었던,
아주 외롭고 처절한 웅크림이었습니다.
지독한 안타까움, 그리고 남겨진 먹먹함
소설 속 외계인은 비록 쫓겨났지만,
지구에서 온몸으로 에너지를 모아주는
다정한 존재를 만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싸울 꿈을 꿉니다.
외계인에겐
동기를 유발할 누군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매튜 그린에겐 끝내
그 차가운 마음을 녹여줄 에너지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주위에 따뜻한 온기가 있었을 텐데도,
이미 너무 많이 다쳐 얼어붙은 매튜의 마음은
그 온기를 감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왜 스스로
뿌리내릴 의지를 더 내지 못 했냐고 다그치기엔,
그가 통과해 온 세상의 온도가
너무나 서늘했습니다.
눈앞의 구원선조차 알아보지 못할 만큼
마음의 눈이 멀어버린 한 인간의 쓸쓸한 뒷모습.
때로는 구원이 늦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너무 깊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 지독한 엇갈림과 고립이 남긴 무게가,
그가 떠난 텅 빈 방 안에 유독 먹먹한 여운으로 고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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