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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찰 기록

블랙박스-보아즈

[인간관찰 기록] 왜 개망나니 보아스의 거친 손 끝에서 구원이 시작되었을까?

소설 《블랙박스》를 읽다 보면 초반에는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아들 '보아스'다. 어른들의 말을 사사건건 거부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모습은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망나니'의 전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설의 진짜 반전은, 모두가 손가락질하던 이 망나니 소년의 거친 손끝에서 시작된다.

가르치려 드는 어른들의 위선적인 세상

보아스를 둘러싼 기성세대의 세계는 지독하리만치 말만 번지르르하다. 엄마 일라나는 전남편을 향한 애증 섞인 폭주를 '사랑'이라 포장하고, 두 번째 남편 미하엘은 종교적인 율법을 들이밀며 보아스를 '교화'시키려고 안달이 나 있다.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이리 와서 내 말 들어." 어른들은 끊임없이 소년을 뜯어고치려 든다.

하지만 보아스는 그들의 설득도, 종교적인 훈계도, 달콤한 척 건네는 도움의 손길도 온몸으로 거부한다.

그 어른들이 말로만 구원과 자비를 떠들며 서로의 삶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짓밟고 있을 때, 보아스는 묵묵히 흙 바닥으로 향한다. 아빠 기드온이 남겨준 황폐하고 허물어져 가던 시골집. 소년은 거기서 아무 말 없이 돌을 옮기고 벽을 고쳐가며 제 손으로 직접 자기만의 세계를 짓기 시작한다.

맞춤법은 틀려도 삶의 태도는 틀리지 않았다

보아스가 쓴 편지들은 엉망진창이다. 맞춤법은 다 틀리고, 문장은 거칠기 짝이 없다. 세련된 지식인들의 언어와 비교하면 보잘것없어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삐뚤빼뚤한 글씨 안에는 이 소설에서 가장 오염되지 않은 정직함과 단단함이 들어 있다.

말 한마디로 누구도 가르치려 들지 않는 것. 그게 보아스의 방식이었다.

어른들이 쳐놓은 잣대를 가볍게 무시한 채 묵묵히 일구어낸 보아스의 유토피아에는 묘한 생명력이 감돈다. 방황하는 어린 청소년들이 찾아오면 거리낌 없이 받아주어 함께 땀 흘려 일하고 밥을 먹인다. 나중에는 스스로 파멸해버린 엄마 일라나도, 죽어가는 친아빠 기드온도, 이복동생인 어린 딸까지도 그 단단한 품으로 조용히 품어 안는다.

"이건 옳고 저건 틀리다"라며 서로를 정죄하던 기성세대가 결국 제풀에 무너져 내릴 때, 정작 그들을 구원한 것은 어른들이 그토록 무시했던 망나니 아들의 따뜻한 밥상과 단단한 지붕이었던 셈이다.

어설픈 훈계보다 단단한 행동이 주는 여운

소설의 마지막 장이 덮이고 나면, 일라나의 비틀린 집착이나 미하엘이 던진 서늘한 성경 구절보다, 황폐했던 집을 묵묵히 고쳐 나가던 보아스의 거친 손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우리 주변에도 보아스 같은 이들이 참 많다. 세상이 정해놓은 모범답안에는 맞지 않아서, 기성세대의 눈에는 그저 '철없는 반항아'나 '루저'로 보이지만, 정작 자기 삶의 무게를 묵묵히 짊어지며 쪼개진 마음들을 조용히 이어 붙이는 사람들.

누가 뭐라든 삐뚤빼뚤 자신만의 문장을 써 내려가던 보아스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하게 된다.

진짜 어른이란, 그리고 진짜 단단한 인간이란 수려한 말로 상대를 가르치려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 말 없이 내 곁의 황폐해진 자리를 묵묵히 고쳐나가는 그 거친 손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