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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찰 기록

왜 에드워드는 윌의 꿈을 꺾는 것이 자비라고 믿었을까

지팡이 끝에서 단 한 줄기의 마법도

쏘아 올리지 못하는 아이,

윌 셰르홀트.

마법이 곧 신분이자 생존인 세계에서,

리가든 마법 학교의 실기 수업 시간마다

윌의 성적표에는 차가운 ‘0점’이 새겨진다.

 

아무리 몸을 던져 몬스터를 베어 넘기고

필기시험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해도,

시스템은 윌을 한낱 '무능력자'로 낙인찍는다.

 

이 얼어붙은 교실의 단상 위,

윌의 운명을 쥐고 맞서는 두 명의 스승이 있다.

 

워크너 교사는

어떻게든 시스템의 틈새를 벌려

윌의 길을 터주려 애쓴다.

 

그 역시 그 길의 끝에

기다리는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아이가 손에 쥔

'검'의 무게와 절박함을 인정하기에,

벼랑 끝으로 내몰기보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선택권을 돌려준다.

 

반면 에드워드 교사의 시선은

서늘함을 넘어 잔인할 정도로 매몰차다.

 

윌이 아무리 압도적인 실전 능력을 증명해도

그를 인정하지 않으며,

매번 낙제를 주어

위 단계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벽을 세운다.

 

겉으로 보면 에드워드는

고집스럽고 냉혈한 악당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독설 뒤에 숨은

진짜 속내를 들여다보는 순간,

깊은 먹먹함이 밀려온다.

 

 

"내가 원망받더라도 어리석은 꿈을 깨워주는 게 내가 주는 자비다.

그곳에 가봤자 검밖에 쓰지 못하는 너는 실험실의 쥐밖에 되지 않는다."

 

 

상처와 흙이 묻은 손으로 검을 단단히 움켜쥔 모습

 

 

에드워드는

이미 그 상위 세계에 도달해 보고

한계를 느껴본 자였다.

 

마법을 쓰는 자들조차

살아남기 힘든 그 지옥 같은 상위 세계로,

지팡이 대신 검을 든 아이가 올라갔을 때

겪게 될 잔혹한 차별과 비참함을

눈앞에 보듯 알고 있었다.

 

그는

차라리 자신이 악역이 되어

뺨을 때려서라도

아이를 지키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이미 경험하고 본

'과거의 미래'를 믿었고,

워크너는

아이가 스스로 개척하고 선택해 나갈

'앞으로의 미래'를 믿었다.

 

어쩌면 사랑한다는 이유로,

경험이 더 많다는 이유로

우리는 타인의 '실패할 권리'마저

빼앗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오늘 밤도

윌은 상처투성이의 손으로

지팡이 대신 묵직한 검을 가다듬는다.

 

에드워드는

그 검이

윌을 망가뜨릴 것이라고 믿었고,

워크너는

그 검을 들고 어디까지 갈 것인지는

윌의 몫이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지켜준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넘어지지 못하게 붙잡는 것일까.

아니면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손을 놓아주는 것일까.

 

 

사랑한다는 마음은 같아도,

그 마음이 상대에게 닿는 방식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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