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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3만 피트의 시야 (생각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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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를 바꾼 사람은 시간의 부피를 잰다 지상은째깍거리는 시계의 물리적 박자를 보며모두에게 공평한 하루가 흐른다고 믿는다. 착각이다.지구의 자전이 규격화한 24시간은생명이 체감하는 시간의 밀도와완전히 어긋난다. 북극의 동토에서고작 몇 개월의 여름 동안싹을 틔우고 열매까지 맺어내는식물의 시간은 초 압축된 폭발이다. 만약 인간이자신의 소멸점을 명확히 인지한다면지상의 삶은지금처럼 느슨할 수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망각에 속아,대부분은영원히 살 것처럼 시간을 흘려보낸다. 육십의 하루는서른의 하루보다 무겁다. 시간의 비대칭성은인간 곁의 작은 생명들을 바라볼 때더욱 명징해진다. 야성을 반납하고인간이 구축한 세계에전 생애를 의탁한 존재들. 그 연약하고 취약한 생명이가만히 햇빛 아래에서 허공을 응시할 때, 그 시선은지구의 자전 속도가 아닌자신만의 메트로..
궤도를 바꾼 사람은 자아의 번호를 선언한다 지상의 언어는 자주 어긋난다. 4원소의 중력은 무겁다. 경계를 설명하려 애쓸수록밀도는 빽빽해지고궤도는 흔들린다. 사람들은사랑이라는 이름으로자신을 내어주다결국 바닥으로 추락한다. 설득은 지상의 소음일 뿐이다. 궤도를 바꾼 사람은낮은 주파수에 맞춰길게 해명하지 않는다. 가장 소중한 원소들이궤도를 침범해 올 때, 대화가 시작되기 전,내가 지금어떤 자아로 말하고 있는지그 번호를 먼저 선언할 뿐이다. 사회를 통과하기 위한 자아인지,궤도를 유지하는 자아인지,아니면 지구 밖에서 내려다보는 자아인지. 이성적 자아의 번호를 찍어두는 것은불통의 통보가 아니다. 서로의 행성이 충돌해파괴되지 않도록궤도의 좌표를 미리 통제하는서늘한 친절이다. 갈등을 두려워해메트로놈의 박자를 내어주는 순간,내 우주는 붕괴한다. 나는 지금이해받기..
궤도를 바꾼 사람은, 결핍의 축적을 믿는다 관점의 전복: 가랑비의 무심함가랑비는 옷을 적시겠다는 의지가 없다.그저 내리기를 그치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은 폭우 같은 단기적 성과에 열광하며자신의 속도를 자책하지만, 성층권의 고도에서 내려다본 지상은소란스러운 소음일 뿐이다. 궤도를 바꾼 사람은박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진공의 구간을 통과한다. 타인의 메트로놈에 귀를 닫고,소리 없이 쌓이는 보이지 않는 힘을 믿는 것. 젖고 있다는 감각조차 없는무심한 반복만이 임계점을 돌파하는 유일한 연료다. 중력의 오류: 박제된 비행45년 만에 다시 마주한 조나단의 결말은 서늘하다. 스승이 떠난 후갈매기들이 한 일은 비행 연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승의 돌무덤을 쌓고어록을 교리로 만들어 외우는 데 집착했다. 날갯짓이라는 고통스러운 '수행'을 버리고숭배라는 편안한 '소..
궤도를 바꾼 사람은, 가까울수록 더 멀리 걷는다 지상의 중력과 작별하기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한다.혼자이면 실패한 삶이라고. 친구가 없으면 결핍이고,모임이 없으면 고립이라며지상의 중력권 안으로우리를 끌어당긴다. 그러나 55년 동안타인의 감정을방어하는 방패로 살아온나에게 연결은 곧 재난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비대한 중력은내 궤도를 짓밟았고,관성으로 이어진 인연들은내 영혼의 연료를 소진시켰다. 나는이제그 소란스러운 연결의 시대를 종료하기로 했다. [메트로놈]이 설계한 차가운 경계내 우주의 주권은이제 타인의 비명이나 요구가 아닌,오직 내 안의 [메트로놈]에 있다. 30년 된 인연을 정리하고혈연의 부름에 침묵하는 것은비정이 아니라 '궤도 수정'이다. 내가 나를 스스로 돌볼 수 있을 때,비로소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성역이 생긴다. 단호한 ‘No’는나를..
궤도를 바꾼 사람은, 해피엔딩이란 이름의 종료를 산다 해피엔딩은 종착역인가, 도피인가우리는 왜 해피엔딩에 집착하는가. 서사가 완성되어야만삶이 의미 있다고 믿는 것은,어쩌면 과정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연약한 방어일지도 모른다. 완성되지 않은 삶은 불행한가.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를 나아가는 탐사선에‘해피엔딩’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마침표를 찍기 위해 사는가,아니면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그 자체가 삶인가. 메트로놈의 리듬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매일 아침,나는 내면의 메트로놈을 켠다. 이 리듬은타인의 박자에 맞추지 않는다. 내가 설계한 루틴은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나하루를 끝까지 밀어낸다. 사람들은 묻는다.“그렇게 반복해서 무엇을 얻으려는가.”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 리듬은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궤도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성층권에서 내려다본 ..
궤도를 바꾼 사람은, 더 이상 이해 받으려 하지 않는다 사람 눈치 때문에 하루가 무너질 때가 있다.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이미 위축되어 있다. 박제된 시선, 타인은 지옥이다Jean-Paul Sartre가 말한“타인은 지옥이다”는타인이 나를 괴롭혀서가 아니다. 그들의 시선이나를 하나의 ‘장면’으로 고정하기 때문이다. 타인은 결코 나의 심연을 보지 못한다.그들이 보는 것은,내가 허용한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그 시선의 중력에서 벗어나기 위해궤도를 바꿨다. 메트로놈의 리듬: 감정이 아닌 선택삶은 감정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이성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내 안의 메트로놈은매일 같은 박자로 나를 점검한다. 감정은 흔들려도방향은 흔들리지 않도록. 50년 동안 나를 붙잡던타인의 기대와 오래된 기준은이 리듬 속에서 점점 소거된다. 이 박자는나를 지키는 방패다. 성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