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은 종착역인가, 도피인가
우리는 왜 해피엔딩에 집착하는가.
서사가 완성되어야만
삶이 의미 있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과정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연약한 방어일지도 모른다.
완성되지 않은 삶은 불행한가.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를 나아가는 탐사선에
‘해피엔딩’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마침표를 찍기 위해 사는가,
아니면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그 자체가 삶인가.
메트로놈의 리듬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매일 아침,
나는 내면의 메트로놈을 켠다.
이 리듬은
타인의 박자에 맞추지 않는다.
내가 설계한 루틴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나
하루를 끝까지 밀어낸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렇게 반복해서 무엇을 얻으려는가.”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 리듬은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궤도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성층권에서 내려다본 것들
성층권의 고요 속에서
지상을 내려다본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의미를 쌓고, 감정에 휘말리며
끊임없이 소란을 만든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그 모든 ‘의미’는
먼지처럼 가벼워진다.
존재의 가벼움을 인정하는 순간,
‘대단해져야 한다’라는 중력은 사라진다.
궤도를 허용하는 방식

나의 궤도 위에는
작은 동반자가 있다.
나는 그를 끌어당기지 않는다.
멈추고 싶으면 멈추고,
머물고 싶으면 머물게 둔다.
상대를 내 궤도에 묶는 것이 아니라,
그의 궤도를 존중하며
그저 함께 걷는다.
사랑은 통제가 아니라
존재를 그대로 두는 용기다.
궤도를 바꾼 자의 선택
이제 나는
타인의 이해를 구걸하지 않는다.
내 삶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는
누군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나는
나의 메트로놈을 지키고,
나의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나의 속도로 걷는다.
오늘 내가 할 일은 단 하나다.
소음을 줄이고,
내 인생의 퍼즐 조각 하나를
제자리에 놓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당신은 지금
끝을 만들려고 살고 있는가,
아니면 계속 나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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