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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3만 피트의 시야 (생각 정리)

궤도를 바꾼 사람은, 가까울수록 더 멀리 걷는다

지상의 중력과 작별하기

세상은 끊임없이

'연결'이 곧 생존이라 속삭인다.

 

친구가 없으면 결핍이고,

모임이 없으면 고립이라며

지상의 중력권 안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그러나 55년 동안

타인의 감정을

방어하는 방패로 살아온

나에게 연결은 곧 재난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비대한 중력은

내 궤도를 짓밟았고,

관성으로 이어진 인연들은

내 영혼의 연료를 소진시켰다.

 

나는

이제

그 소란스러운 연결의 시대를 종료하기로 했다.

 

 

[메트로놈]이 설계한 차가운 경계

내 우주의 주권은

이제 타인의 비명이나 요구가 아닌,

오직 내 안의 [메트로놈]에 있다.

 

30년 된 인연을 정리하고

혈연의 부름에 침묵하는 것은

비정이 아니라 '궤도 수정'이다.

 

내가 나를 스스로 돌볼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 생긴다.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No'는

나를 지키는 가장 고결한 성벽이며,

이 성벽 안에서만 나는 비로소 안전하다.

 

 

성층권의 미니멀리즘

높이 올라올수록 풍경은 단순해진다.

 

이제 내 우주에는

내가 선택한 핵심 원소들만 남았다.

 

남편, 딸, 아들, 그리고 나의 강아지.

 

나는

이들과의 관계를 '프로젝트'라 부른다.

 

질척이는 감정의 덩어리가 아니라,

각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며

최적의 궤도를 유지하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구태여

새로운 인연을 구걸할 필요는 없다.

 

책 속의 현자들과 나누는 대화,

드라마 속 삶을 조망하는 시선만으로도

성층권의 고요함은 충분히 풍요롭다.

 

 

고독이라는 고귀한 성취

사람들은

노년의 고독을 재앙이라 부르지만,

궤도를 바꾼 사람에게

고독은 치열한 투쟁 끝에 얻어낸 '전리품'이다.

 

불필요한 소음이 소거된

이 적막이야말로

내가 평생 찾아 헤맨 해피엔딩의 배경이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이 텅 빈 우주가 나에게는 가장 완벽한 질서다.

 

 

오늘의 항로

나는 오늘도 나의 박자를 지키며,

나를 옥죄던 중력이 사라진 공간을 유영한다.

 

60년의 소란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

그리고 내가 선택한 이들과만 공유하는 고요한 산책.

 

이것이 내가 정의한 종료이자,

내가 누리는 해피엔딩이다.

 

 

당신이

사랑이라 믿으며

꽉 쥐고 있는 그 줄은,

 

상대의 궤도를 지켜주는 생명줄인가?

 

아니면

서로를 질식시키는 올가미인가?